안녕하세요. 사진 작가 소개를 맡은 사진의 이해 3조 김태희입니다. 오늘은 사진작가 안드레 케르테즈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안드레 케르테즈는 1894년 출생, 헝가리 출신의 유태인 사진작가로 헝가리, 파리, 뉴욕을 오가며 다양한 학파와 사진양식에 인접해있던 인물입니다. 그는 추상주의, 구성주의, 초현실주의 등 여러 학파의 예술인들과 교류하면서도 자신의 시각을 오롯이 담아내는 본인만의 솔직한 사진세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도 사진업계의 선두주자가 되던 그는 그가 추구하는 사진세계로 인해 뉴욕에서의 상업사진 작업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는 뉴욕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와 직업적 고난을 느끼던 중 1985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저희는 안드레 케르테즈의 작품이 그의 생애와 연관성이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그가 머물렀던 도시들로 크게 세 부분(헝가리, 파리, 뉴욕)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첫 카메라를 구입해 자신의 주변 환경을 촬영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진은 그가 1912년 열여덟 살에 남긴 그의 생애 첫 작품인 <잠자는 소년>입니다. 이 사진의 피사체가 일상적 영역에 속한다는 점과 이 사진구도의 기하학적, 현대적 분위기로부터 그가 일생동안 추구하던 사진세계를 미리 볼 수 있습니다.
1915년 제 1차세계대전 오스트리아 헝가리군에 징집된 케르테스는 러시아와 폴란드 전선에 있으면서도 카메라(안드레 케르테즈 구글 문서에 있음)를 들고 다니며 전우들의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그는 아마추어 사진작가일 뿐이었지만 전쟁의 결과와 처참한 현장만을 촬영하던 다른 사진작가들과 달리 전장의 전우들, 집시들과 같은 "사람들의 삶"을 촬영했습니다. 비교적 사소한 대상과 순간들을 사진에 담아내던 케르테즈는 핸드헬드 카메라 사용법에 혁명을 일으킬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장에서 부상을 당한 케르테즈는 헝가리에 머물며 수영 재활을 받게 됩니다. 이 사진 <Underwater Swimmer>, 1917년작은 케르테즈가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수영장의 물결을 관찰하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이 촬영된 1917년, 뉴욕에서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폴 스트랜드, 찰스 쉴러에 의해 모더니즘 사진이 흥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모더니즘 사진은 두가지 충돌하는 개념을 함께 다루는 ‘모호함’을 추구했습니다. 케르테즈가 촬영한 이 사진은 정지상태와 운동상태를 동시에 표현하는 사진으로, 피사체는 정지 상태에 있는 것처럼 촬영되었지만 케르테즈가 동적인 움직임을 관찰하고 촬영하였기에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 사진에 속합니다. 케르테즈는 뉴욕의 모더니즘 사진을 접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모더니즘 사진을 촬영한 것입니다. 이후 이 사진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진이 됩니다.

그는 주변 환경이나 그의 형제들을 촬영하면서 버드아이즈뷰가 돋보이는 <wine cellars at Budafok>, 연출로 사진에 서사를 부여하는 <The Dancing Faun>와 같이 본인만의 특이한 사진세계를 구축해나갔습니다.
1925년, 보다 많은 문화적⠂예술적 기회를 갖기 위해 파리로 떠난 케르테즈는 여러 학파의 예술인들과 어울려 다녔지만 자신의 직관에 자신감이 있었고 어느 한가지 학파를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케르테즈는 파리에 머물며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은유적인 사진들을 찍기 시작합니다. 수잔 손탁은 ‘그의 작업물들이 대중들로 하여금 그의 관점을 이해하게 만드는 설득력이 있다’는 의미로 그의 사진들을 ‘a wing of pathos’라고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맨 왼쪽의 <Satiric Dancer>는 다리를 살짝 꼬아서 조각상을 표현하는 무용수를 내려다보는 시점에 광각이 더해져 역동적인 느낌이 들며 시각적인 운율이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그 옆 <The Fork>와 <Mondrian’s Glasses and Pipe>는 사진 속 피사체들이 적절한 구성( formal composition)으로 이루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흔한 사물들만으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진입니다.
헝가리에서 사소한 주변환경에 주목했듯이, 케르테즈는 빛의 도시 파리에 머물면서도 여행객들이 촬영해가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들보다 사소한 대상에 이끌렸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진작가들이 솔라리제이션, 포토몽타주로 사진에 후처리를 할 때 그는 그가 체험할 수 있는 영역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그는 그 중에서도 빛과 그림자를 가장 선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맨 왼쪽의 <졸리베 광장>에서는 사진의 정가운데 광원이 그 주변 나무들의 그림자를 만들면서도 화면 바깥쪽에 배치된 가로등들이 나무의 또다른 각도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From the Eiffel Tower>의 비스듬한 버드아이즈뷰 구도에서는 행인들 위로 드리워진 에펠탑의 그림자가 돋보입니다.

<Self-portrait>는 케르테즈가 스스로의 그림자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그는 루이 14세 시대에 등장했던 실루엣 초상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으로 종종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케르테즈는 헝가리에서 비교적 무거운 카메라로 전우들의 사진을 촬영했었는데요, 파리에서는 1925년에 등장한 작고 가벼운 카메라인 라이카를 사용하면서 우연적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뫼동>은 각자의 방향으로 향하는 증기기관차와, 남자무리, 짐을 든 한 남자를 동시에 포착하고 있어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포토저널리즘(보도사진)을 이끌었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멘토와 같은 존재였기에 포토저널리즘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독일, 영국의 잡지 등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던 케르테즈는 주간지의 요청을 받고 첫 연작인 <Distortion>에서 혁신적인 누드 연작을 촬영하게 됩니다. 헝가리에서 형제들을 촬영하고, 파리에서 <Satiric Dancer>를 촬영하며 신체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방법을 깨달은 그는 연작 <왜곡>을 촬영하면서 그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 연작에서 신체는 시각적인 왜곡으로 극단적으로 축소되고 늘어나 불쾌한 누드로 보여지지 않고 오히려 신체의 돌출부분을 강조해 새로운 시각으로 신체를 바라보게 합니다.
파리에서의 유태인 박해가 심해지자 1935년 그는 에이전시와의 계약을 맺고 뉴욕을 향해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생활은 케르테스에게 고통이었습니다. 미국의 잡지사는 케르테스에게 다른 작가들과 유사한 스타일로 사진을 찍도록 요구했고 케르테스는 에이전시와의 계약을 파기하게 됩니다. 자극적인 사진을 추구하던 미국의 『라이프』 잡지는 “그의 사진에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며 케르테즈를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적성 외국인’으로 분류되었고 그 기간동안 미국의 정기간행물에 사진을 실을 수 없었습니다.

맨 왼쪽의 <The Lost Cloud>은 간단한 기하학적 구성의 건물과 작은 구름 한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작품의 구름이 케르테즈가 느끼던 뉴욕에서의 고립감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비유적인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옆의 <집으로 가는 배>에서는 배가 바다가 아닌 육지에 있음으로 미루어 보아 그것이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난 케르테즈를 의미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맨 오른쪽의 <뉴욕>에서도 화려한 간판들 옆에 홀로 먼곳을 바라보는 남자에 그의 마음을 빗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케르테즈는 제 2의 고향 뉴욕에서 1949년부터 창조성을 포기한 채 의미 없이 모델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예술가들과의 교류 단절, 고향에 대한 향수, 직업적 고난으로 우울증에 빠져있던 중에 건강까지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것을 줌렌즈 사용으로 보완하여 기하학이 돋보이는 거리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냅니다.

이 슬라이드의 사진 모두 케르테즈가 높은 앵글에서 줌렌즈, 주로 망원렌즈를 사용한 것으로 사진 속 물체들 간의 원근감이 줄어들고 균형이 느껴지는 기하학적 사진들입니다.
“나는 아마추어이며 나의 여생 또한 아마추어로 살 생각이다”라고 말한 케르테즈는 일생 동안 카메라를 놓지 않고 꾸준히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전적인 작품들을 찍어 왔습니다.  그는 회화주의/분리주의 학파와 반대로 인위적인 기술이나 후처리 없이 피사체를 정직하게 담아냈던 점에서 모더니즘 학파의 성격을 가진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모더니즘 학파와 다르게 사진 속에 객관적 상관물을 등장시키며 은유적인 사진을 만들어냈고, 진부한 대상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갖고 있었기에 초현실주의 학파의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의도치 않게 기하학적인 사진들을 찍어냈기에 구성주의 학파의 성격도, 다양한 삶의 형태도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휴머니즘 학파의 성격도 가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여러 학파의 성격을 보여준 안드레 케르테즈는 자신의 사진에 의미를 담기도, 담지 않기도 했던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진이라는 것이 어떠한 예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진은 작가의 독창성을 살릴 수 있는 예술일까요? 혹은 순전히 촬영된 대상을 드러내는 예술일까요? 아니면 두가지 모두 가능한 창조적인 예술일까요? 저희가 케르테츠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 물음을 던지면서..  작가소개 발표를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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